런지에는 경어체가 평어체로 편집되었는데, 문체가 글의 느낌도 조금 다르게 하네요. 이곳에는 원본글로 올리겠습니다."


이유 있는 항해
‘감비아’는 CO 전까지 그야말로 이름도 생소한 채 ‘잠비아’와 헷갈리기만 한 나라였습니다.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대륙 아프리카. 새까만 피부를 가진 사람들과 지내는 것은 마음에 그려본 적도 없는데, 이곳에서 그들과 살을 부대끼고 함께 웃고 함께 울며, 현재 우리 가족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 가끔은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막연하게 중동이나 중앙아시아의 이슬람국가를 섬기기로 작정하고 선교훈련을 받기 위해 떠났고, MTC 중에 A국으로 길을 여시는 것으로 믿고 따라갔지만, 정작 우리의 최종 도착지 감비아는 그 땅 A국의 문이 닫힌 후에야 저희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연은 비단 저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압니다. 다른 선교사님들과 살아온 얘기를 나눌 때마다 어쩌면 그렇게도 기가 막힌 간증들이 많은지… 미리 알았더라도 그 길을 그리 쉽게 떠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그 길을 인도해 가시는 우리 주님이 더 재미있는 분이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눠주고 싶어하시는 보물은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의 주제를 넘어서는 더 소중한 어떤 것일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작은, 그렇게 한쪽 구석에 보일 듯 말 듯 놓여진 나라, 그 속에서도 ‘시바노’라는 작디 작은 마을에 있는 우리를 발견할 때만 이런 느낌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2005년 선교 훈련을 위해 출국하기 직전 충격으로 다가왔던 아내의 암 진단. 오직 은혜 가운데 치른 이 첫 시험을 지나며 아내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고통이 축복이 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힘든 선교 훈련이나 선교지에서 어떻게 마음을 추스리며 감사하고 겸손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심정으로 영혼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은 WEC의 긴 훈련기간. 때로는 마음이 무너지게 어렵기도 했지만, 그래도 많은 시간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배워가는 기쁨 가운데 MTC와 CO를 마쳐갈 때쯤, 웩을 ‘우리에게 잘 맞는 옷’으로 느끼며 감사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필드로 나오며 New worker로서 느끼게 된 웩은, 우리의 어눌한 표현마저 미소와 사랑으로 품어주던 핑크빛 시절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척박해 보이는 땅에서 변화 하지 않을 것 같은 현지인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답답함보다, ‘선교사’라 불리는 사람들 안에서 느껴지는 시기심, 비교의식과 사랑없슴을 보는 것이 때로는 더 어렵고 실망스러운 것 같았습니다. 영어의 한계로 마음의 감정도 속 시원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이 답답한 상황에서 우리만 죽어라 일하는 것 같고, 괜히 우리만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은 웩을 뛰쳐나가던지 아님 단독 사역을 한다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되기도 했습니다. ‘순종과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올인하여 뛰어든 이곳 필드에서 그렇게 마음이 무너지고 지칠 때마다 주님을 더 붙잡을 수 밖에 없었고,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들이 주님이 우리 인생을 향해 가지신 계획을 어느 때보다 깊게 묵상해가는 시간이 되었던 것을 봅니다.
나와 동일한 자리에 바로 예수님께서 먼저 계셨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그 때에 다른 곳을 보지 말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시던 분, 낮아지고 낮아지기만 하는 것 같은 그 때에도 ‘내가 바로 그 낮은 자리에 먼저 있었노라’고 말씀하시던 분… 그렇게 그 분을 다시 발견할 때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이유가 다만 가나안 땅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배워가는 것이었음을, 그리고 그 배움을 통해 그 분과 그 분의 말씀이 내 삶에 더욱 실제가 되어가는 것임을 알아가게 됩니다.
감비아 웩과 함께 30년 이상 감비아를 섬기시다 지난 해 대장암으로 소천하신 한 스위스 여자 선교사님의 유품 중 일부가 어느 날 선교사들에게 나누어졌었습니다. 그 때 집어 들게 된 오스왈드 챔버스의 묵상집 ‘My Utmost for His Highest’는 제게 낯선 책은 아니었습니다. 국제협력의사로 도미니카에 있던 시절 다른 선교사님과 함께 나누며 묵상한 책이었고, MTC중에도 좋은 동반자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만남으로 내 삶에 다시 끼어든 이 책,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곱씹고 있는 최근의 묵상들은 이전의 그것들과 깊이가 다름을 느낍니다. 한결 같은 말씀 ‘주님과의 관계’의 중요성, 그것만이 참된 신실함(Faithfulness)을 이끌어내고 또 그것이 진정한 교회개척(Church planting)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 이 책이 제게 소개된 지 12년이 지난 요즘 더 절절한 실제로 내 삶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사이 웩을 소개받고, 그 길을 준비하고, 훈련 받고 그렇게 걸어온 10년이 내 인생을 향한 주님의 이유 있는 계획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울에 있는 S 의료원에 잠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의사로서 지내온 어떤 경력보다도 어쩌다 우연히 나누게 되는 이 경력 하나가 더 많은 주의를 끄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이 병원이 제가 없이 너무나 잘 굴러가고, 지금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어도 그 병원은 계속 누군가로 채워지고 잘 돌아갈 텐데, 그 병원 안의 사람들도 병원의 이름으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유혹들이 있었던 것을 봅니다. 한 때 제게도 있었던 그런 숨겨진 교만이, 지금은 ‘선교사’라는 타이틀에, 혹은 ‘OO 선교지’, 아니면 ‘OO 선교단체’라는, 그리고 심지어는 ‘교회개척’이라는 이름 안에 여전히 있는 것은 아닌지를 조심스레 돌아봅니다.
오스왈드가 도전했던 것처럼, 아무런 주의도 끌지 않는 곳에서 남의 발 아래 놓인 ‘doormat’와 같이 그렇게 나의 동료 선교사들을, 또 나에게 주신 현지인 영혼들을 계속 섬기는 일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내 주 예수님이 먼저 그렇게 사셨고, 선배 되신 사도들이 그렇게 따라 살기를 기꺼워하고 기뻐하셨던 것을 되새기며(고후12:15) 나도 그 삶을 조금이나마 조금이나마 따라하고픈 마음을 갖게 되는 것…. 들의 백합처럼 이곳에 이렇게 있으며(마6:28) 주님의 살아계심을 그렇게 드러내고 싶은 소망을 품게 되는 것… 이것이 내 삶을 이끌어가시는 주님의 선하고 선하신 계획이며 내 삶의 진정한 보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아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2 comments:
은혜가 되요..우리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그분 안에 있으므로 감사한것을..교만은 우리가 끝까지 싸워야 할 적이지 싶고..
매일 기도하며 응원하고 있어요. 우기에도 가족 모두 강건하며 기쁜 날들이기를 바래요.
그래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로 돌아 가는 길이 지름길이지요.
저도 요즘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이땅에 왜 와있는지?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가야 되는것 아닌지? 나에게 주님이 어떤분인지?
--고독의 시간이 저에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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