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December 2008

요한과 마리아의 편지 #015-08년12월

[Here is my family's second newletter from The Gambia (in Korean).]



요한과 마리아의 편지 [#015]

2008년 12월


“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눅2:12)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시며, 아버지 곁에 계시던독생자이신 분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요1:18) ”



사랑하는 분들께,

2008년은 저희 가정에게 큰 변화가 있었던 해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한 해 동안, 영국에서 4개월 반, 그 후 4개월 한국에서의 시간,,, 그리고 감비아에서 지금의 삶…. 때로는 한 편의 긴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아직도 감비아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생소할 때가 있습니다.더운 나라에서의 크리스마스… 이 색다름 가운데 이제 막 감비아에서 첫 3개월을 넘겼습니다. 감비아에서 보낸 지난 기도 편지 이후 아직도 여러 변화 가운데 지내고 있는데, 그 중 몇 가지 얘기를 나누려 합니다.



[ 요즘 사는 얘기 ]



가장 큰 변화는 웩 감비아 필드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만딩고 어를 배우기로 결정하였고, 이 언어를 효과적으로 배우기 위해 현지인들과 함께 사는 compound로 이사한 것입니다.이곳은 아이들을 포함해 40명 정도가 한 마당을 사용하고, 집들은 서로 모여 ㅁ 자 모양을 만드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11월 11일 이곳으로 이사를 해서 또 한번의 상황 변화 가운데 지내고 있습니다. 자세히 표현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우리가 그간 누렸던 문명의 이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환경의 불편함이라는 것에 우리가 또 얼마나 잘 적응해 갈 수 있는 것인지를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부엌에는 물이 전혀 나오지 않고, 욕실에서만 밤 10시 혹은 12시부터 새벽 5시 정도까지 물이 나오기 때문에 이것을 받아 3개의 큰 통에 물을 채워, 다음 날 쓸 물을 준비하는 것이 저희의 큰 일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감사한 것들도 있습니다. 희진, 유진이가 이곳에 있는 10명 가량의 감비아 아이들과 친하게 잘 놀게 되었다는 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내년 1월에 세네갈에 있는 학교(BCS)에 갈 때까지 이런 시간을 갖기를 기도했었는데, 아이들이 이 나라와 아이들을 더 좋아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 아이들 학교 방문 얘기 ]



11월 18일, 새벽 6시에 출발하여 항구까지 반 시간을 가서, ferry를 타기 위해 한 시간을 기다리고, 다시 울퉁불퉁한 비 포장 도로를 한 시간 지나 감비아-세네갈 국경에서 수속을 위해 또 한번 기다리고, 국경을 통과한 후 다시 한번 4시간 정도를 달리는 긴 여행길 이었습니다. 이렇게 도착한 BCS 학교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6박 7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기간 동안 아이들은 저희와 떨어져 자고, 실제로 수업에 참석하여 적응 여부를 시험하는 기간이기도 했고, 저희들은 그 곳에 계시는 선생님들과 여러 차례 면담을 가졌습니다. 유진이 나이가 어린 것을 많이 염려 하셨고, 내년 9월에 올 것에 대해서 의견을 내기도 하셨는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잘 지내주어 감사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아이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학기 시작인 내년 1월13일부터 학교에 가기로 최종 결정을 했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긴 했지만, 가족 모두가 평안 가운데 이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비아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는 지금 상황이나, 세네갈에서 부모와 떨어져 있을 상황이나 부모 입장에서 모두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이 사실임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주님께서 간섭하실 것이기에 그 분에 대한 전적인 신뢰 가운데 나아갑니다.



[ 신참내기 선교사의 생각 ]


3개월을 지내며, 정말로 많은 기도 응답과 여러 감사의 제목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일 가운데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주님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곳 선교지에 있는 저희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의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지금 언어를 배우기 위해 있는 compound에서의 생활, 앞으로 가게 될 시바노 시골 지역의 삶, 아이들을 떠나 보내야 하는 일, 다시 옛날 부모님 세대의 낙후된 환경과 불편한 삶을 사는 것, 그리고 그 환경 가운데 때때로 쉽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들을 생각할 때면 가끔은 스스로를 처량하게 느끼게도 합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열매마저 없으면 어떨지, 예수님을 사랑해서 왔는데 현실의 상황이 기쁨을 빼앗아 가고 혹이나 기쁨이 없는 순종을 하게 된다면 예수님은 그것을 좋아 하실까 하는 생각들을 나누기도 합니다. 선배 선교사들을 통해 새로 배우는 언어와 연애를 하는 기분이었다는 열정적인 고백을 들을 때면 나이를 핑계 댄 게으름이 부끄러워지고, 많은 열매와 교회 개척의 소식을 접할 때면 과연 우리는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곳이 아니라면 어쩌면 쉽게 감추어졌을지 모르는 우리의 연약함을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또 하나의 축복인 것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능력의 유일한 근원 되시는 성령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위해 갈급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지붕을 뚫고 침상의 병자를 예수님께 인도했던 친구들처럼 여러분들의 중보기도가 저희를 주님께 더욱 집중하게 할 것을 믿습니다. 저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우리의 어떤 능력이 아닌, 바로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시니까요.


그래서, 성탄을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까지 오신 하나님의 사랑이 저희와 여러분을 덮고 넘쳐서,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감비아 사람들과 온 세상에 넉넉히 흘러 가기를 기도합니다.


감사 (Praise)…

1. 가장 힘들다는 계절에 도착했지만, 감비아에서의 첫 3개월 동안 크게 아픈 것 없이 잘 지내고 아이들이 감비아 아이들과 친하게 노는 것
2. 새 차, 기증 받은 초음파 기계 운송 등… 모든 것을 순적히 이루어 가시며 주님의 도우심과 공급하심을 보게 하신 것
3. 동역자들의 기도와 후원으로 계속 서로를 위해 중보케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기도 (Prayer)…

1. 생활의 불편함으로 힘들고 우울할 때가 있는데, 날마다 성령충만과 주님의 임재로 승리하도록
2. 아이들이 1월 13일부터 갈 학교(세네갈 BCS)에 부모와 떨어져 잘 적응하고 힘들어 하지 않도록
3. WEC 감비아, 특히 내년 초 합류하게 되는 시바노(Sibanor) 지역 팀의 연합과 사랑을 위해
4. 새로 배우는 만딩고 어를 잘 배워 주님이 보이시는 종족과 사역지에 소망을 세워 나가도록
5. 부족한 자인 우리 가정이 주님 성령의 능력을 드러내는데 전적으로 쓰임 받도록
6. 동역자와 붙여 주실 현지인들에게 주님의 성품과 마음으로 대할 수 있도록
7. 가족이 더위, 벌레, 질병으로부터 늘 보호되며 영, 육, 혼이 강건 할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008년 12월 23일

- 보냄을 받은, 요한과 마리아 가족 (한혁준/안현숙/희진/유진) 올림

08 December 2008

가족의 선택 (BCS - II)

[ Our family had to decide when the children would start to go to BCS.. In January or in September next year... It was not easy but we eventually chose the decision of January. Here are some reasons why we chose like that...]

아래 벽화는 BCS의 한 졸업반이 강의동 벽에 남겨놓은 졸업작품이었습니다. 제3의 문화 가운데 커가는 그들 스스로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어 한동안 이 그림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었습니다...



BCS에서 5박6일의 일정이 오리엔테이션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아이들이 부모들과 완전히 떨어져 직접 체험 학습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고 있었는데... BCS에 도착하던 날, 앞으로 5박6일간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학교생활은 물론 실제 기숙사 생활도 하게 될 것으로 설명을 들었습니다. 물론 깜짝 놀랐지요. 아이들이 그렇게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왔으니까요.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아이들이 이것을 받아들여 주어 모의 체험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이 기간동안 아이들이 기숙학교로 오는데 문제는 없는지 혹은 학교가 아이들을 받는데 문제는 없는지를 지켜보는 기간이 되는 것이지요.

첫날밤을 지나고 식당에서 만난 독일인 기숙사 부모님으로부터 전날 밤 유진이가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다행히, 엄마 아빠에게 가지 않고 참아보겠다고 얘기한 부분은 긍정적이었습니다. 둘째날은 친구가 없다고 희진이가 시무룩해져서 우리가 묵고 있는 게스트룸으로 찾아오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둘 다 잘 적응하고 친구들도 사귀어 노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참 다행스러웠습니다.



희진이, 특별히 학교에서 가장 어린 유진이가 5박6일동안 비교적 잘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선생님이나 학생들 그리고 학교의 시스템이 안정되어 있는 것 같아 감사했고 아이들도 BCS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져가는 것도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선생님들과 스텝 안에서 유진이를 향한 걱정들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껴가게 되었습니다. 학업이라든지 기숙사 등 학교생활을 하는데는 생각 이상으로 잘 한다고 판단이 되었고 학교의 연령 규정에도 문제가 없었지만, 여전히 유진이의 어린 나이에 대한 부분을 반신반의 하고 있었습니다. 내년 2월에야 만 7살이 되는 유진이가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지는 것을 통해 마음 가운데 인생에 지우지 못할 상처가 생기지 않겠냐는 것이었지요...

학교측에서는 내년 9월 새 학년이 시작할 때에 맞추어 학교에 오는 부분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혹시 1월에 오게 된다면 아이들 엄마가 각 학기의 첫 3주간을 함께 머무르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원래 지난 9월부터 다니기로 되어 있었다가 이미 한 학기를 미룬 상태인데, 이제 또 다시 내년 9월을 얘기하는 것이 의아하긴 했지만 학교 측의 생각도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었습니다. 마침 BCS에서의 일주간이 저희 부부에게는 비교적 여유있는 스케줄이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이 부분에 대해 기도하며 얘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예상대로 마지막 결정은 우리 가족의 몫이었기에, 좀 더 기도하고, 특별히 아이들과 진지하게 시간을 갖고 얘기를 나누어 보겠다는 대답으로 최종 결정을 유보하고 감비아로 돌아왔습니다.

감비아로 돌아와 아이들과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주일만에 아이들과 편안하게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작년 이맘 때 감비아행을 결정하고 오랜동안 아이들의 학교를 놓고 함께 기도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준비가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쳐온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고 있지만 아이들의 결론도 내년 9월보다는 1월에 가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결정을 내리게 된데는 내년 1월과 9월에 BCS의 달라지는 상황도 한 몫을 하였습니다. 우선은 한국인 부모로 계신 진준규, 하은혜 선교사님이 안식년을 가지시기 때문에 내년 9월부터 계시질 않고, 희진이 유진이가 묵고 있는 기숙동의 한국인 언니, 오빠가 내년 9월부터 다른 기숙동으로 옮기게 되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부담이 되었나 봅니다. 저희들 마음 가운데 있던 결론도 아이들의 생각과 동일했습니다. 때문에 온 가족이 평안 가운데 이 결정을 내리고 감비아 필드 리더에게 그 결정을 통보할 수 있었습니다.

BCS의 시간동안 진 선교사님네와 나누던 대화 중에 한 부분도 저희에게 평안을 더해 주었습니다. ...유진이의 나이가 아직 어린 것이 사실이고 할 수만 있다면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다면 '믿음' 가운데 발을 내딛는 것이 옳지 않겠냐는 것이었지요. WEC이 "믿음 선교(Faith Mission)"를 얘기하고 있는데 이것이 비단 재정 부분에만 국한될 수는 없다는 얘기도 나누었습니다. 만의 하나, 아이들이 잘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때 가서 다시 고민을 해보아야겠지만, 지금은 온 가족이 기도하면서 한 발짝을 더 내딛어야 할 때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상황이 그리고 이 한번의 결정이 모든 것을 고정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계속되는 기도가 필요하고 어쩌면 그것이 축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희 가족은 이제 기도 가운데 내년 1월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모든 상황을 평안 가운데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께, 그리고 함께 기도해 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이사야30:19-21).





BCS 다녀오다 (BCS -I)

[ ...We came back from a journey to Bourofaye Christian School (BCS) in Senegal. During the time of orientation, five nights and six days, we all families have experienced the life of BCS a little. We have felt not only that our Lord has been preparing this step even before us but also that we have to keep praying for it...]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던 집을 우리집처럼 만들고 적응해 가는데 일주일의 시간도 부족하더군요. 일주일간 열심히 집을 정리하다가 지난 11월18일 화요일에 예정대로 BCS로 향하는 길을 떠났습니다. 아이들이 오는 1월부터 선교사자녀학교[MK School]며 기숙학교[Boarding School]인 세네갈의 Bourofaye Christian School(BCS)에 가기로 되어 있는데 이를 위한 5박6일동안의 오리엔테이션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직은 차가 없기 때문에 이번에도 호주 출신 싱글 선교사님인 Robyn이 운전을 맡아 주었습니다. BCS에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어 본인도 경험삼아 가 보고 싶다고는 했지만 저희로서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제가 일하게 될 Sibanor Clinic의 영국인 선교사인 Jamie 선교사 가정이 그들의 차를 사용하도록 빌려주기까지 했습니다. 그 집의 큰 딸도 지금 BCS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BCS로의 여행을 잘 이해하고 있는 가정입니다. 세네갈까지의 길이 멀고 어떤 길은 험하기도 한데 이렇게 배려해 주어 Jamie 선교사 가정의 미쯔비시 차가 저희의 발이 되어 주고 Robyn이 저희의 가이드가 되어 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이 모든 일정의 보호자가 되어 주셨구요.

아직도 어둑했던 오전6시30분 Robyn이 컴파운드 앞길로 와 주어 함께 반줄(Banjul)항구로 향했습니다. 저희가 도착할 때쯤 페리(Ferry)가 떠나는 바람에 다음 페리를 기다려야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한시간 정도 후에 다음 페리를 탈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하루종일 페리를 기다리게도 된다는데 운이 참 좋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이번에 세네갈 비자를 순조로이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감사제목입니다. 일년에 9차례 이상 다녀야하니 비자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는데 계속 이 모든 과정들이 은혜 가운데 진행되기를 기도합니다. 반줄 항에서 감비아 강을 건너서 다시 감비아-세네갈 국경을 향해 가야합니다. 오전9시에서 9시30분쯤 국경에 도착한 것 같고 감비아와 세네갈 국경수속을 마치니 오전 10시30분쯤 되었습니다. 국경 수속을 마치면 세네갈 내에서만 4시간 정도 운전을 더 해야한다고 들었는데 그 정보가 대략 맞았습니다.


중간 도시인 Kaolack까지의 길은 곳곳이 패여진 상태였고 제대로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에 비해 Kaolack 이후의 길은 훨씬 나았습니다. Dakar를 향한 표지판을 보며 계속 달렸고 Fatick과 M'bour를 지난 후에는 Gandigal, Nguekhohr이라는 자그만 마을을 통과하고 세번째 자그만 마을인 Sindia에서 Popenguine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바닷가쪽으로 좌회전을 했습니다. 망고가 많이 심어진 들판을 지나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두개의 나무기둥이 있었고 그 사이길을 따라가니 드디어 BCS... 오전6시30분에 떠난 길이었는데 오후 3시쯤 도착했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랍니다.
문득 한국에서 2001년 11월 한동대학교를 찾아가던 기억이 새로왔습니다. 마을을 한참이나 지나 벌판과 산들 가운데 외로이 세워졌던 학교, 하지만 한동이 하나님의 학교임을 느낄 수 있었지요... 주변 상황과 건물로만 보면 BCS는 한동대학교에 비할 수 없이 마르고 초라해보이기는 했지만, 한동과 비슷한 Spirit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BCS는 1980년 감비아를 남쪽에서 둘러싸고 있는 남부 세네갈 즉 Casamance지역의 행정도시인 Ziguinchor에서 10 Km 정도 떨어진 "Bourofaye"에 처음 세워졌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지금의 BCS (Bourofaye Christian School)라는 이름이 나왔지요. 지역분쟁 때문에 1997년 8월 Dakar [세네갈의 수도]에서 25 Km 정도 떨어진 Keur Massar라는 마을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가, 2002년 10월에 Dakar에서 남쪽으로 70 Km 떨어진 이곳 Kiniabour에 다시 오픈하게 된 것입니다.

이 학교는 웩(WEC)국제선교회 세네갈 팀의 사역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교육문제 때문에 떠나가는 선교사들이 늘면서 세네갈과 주변 지역 웩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을 돕기 위해 세워졌지만 다른 단체 선교사의 자녀들에게도 열려있지요. 이곳에 계신 선생님은 물론 MK들의 기숙사 생활을 돕는 기숙사 부모(Dormitory parents)들도 모두 선교사님들입니다. 주로는 웩 선교사님들이지만 여기에 다른 단체 선교사님들과 단기선교사로 온 도우미들이 함께 학생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학생 수는 약 40여명... 영국, 독일, 한국, 노르웨이, 나이제리아, 네델란드, 브라질... 총 17개국의 각기 다른 나라에서 모인 학생들이었습니다. 한국 학생으로는 세네갈에서 SIM을 통해 일하시는 선교사님 가정의 아들과 딸, 감비아에서 WAM을 통해 일하시는 선교사님 가정의 두 아들, 이렇게 네명이 있었습니다. 다음 학년에는 안식년에서 돌아오는 한국인 선교사 가정이 있어 학생 수가 더 늘어난다고 하네요.




한국 MK들과 함께 브라질 출신 MK들이 늘어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BCS의 특징 중에 하나는 출신나라 사람으로서의 identity를 존중해 주고 그것을 교육과정에도 반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전체는 영국식 교육을 지향하고 있지만, MK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 각 학생의 모국에 대한 교육에도 신경을 써주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학생들을 위해 Home Base라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곳에 계신 진준규, 하은혜 선교사님 가정이 이 일을 감당해 주고 계셨습니다. 학교 내 모든 곳에서의 공용어는 영어였지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아침식사 후 묵상시간 그리고 저녁을 함께 먹으며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이 일을 위해 헌신하신 한국인 선교사님 가정이 계신 것은 저희에게 큰 격려였고 두 분과의 교제로 5일간의 일정이 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스텝들과의 대화 중에 더 기도하고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5박6일의 일정을 잘 마치고 지난 23일인 주일에 감비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시바노의 Jamie 선교사님에게 차를 반납하여야 했기 때문에 돌아오는 루트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저희가 시바노로 이사를 하게 되면 가끔 이 길을 이용하게도 될 것이기에 저희로서는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약 30분 정도 헤매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순탄한 여행이었습니다. 감비아로 들어 온 후에는 운전을 맡아주었던 Robyn 선교사님이 전에 일하시던 Jarrol이라는 시골지역에 들러 하루밤을 자고 다시 시바노에 들러 Jamie 선교사님께 차를 돌려주었습니다. Robyn선교사님의 차로 다시 갈아타고 Manjai로 돌아오니 딱 일주일이 걸린 여행이었습니다.
이제는 희진이와 유진이와 진지한 대화를 나눈 후 아이들의 진학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시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