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던 집을 우리집처럼 만들고 적응해 가는데 일주일의 시간도 부족하더군요. 일주일간 열심히 집을 정리하다가 지난 11월18일 화요일에 예정대로 BCS로 향하는 길을 떠났습니다. 아이들이 오는 1월부터 선교사자녀학교[MK School]며 기숙학교[Boarding School]인 세네갈의 Bourofaye Christian School(BCS)에 가기로 되어 있는데 이를 위한 5박6일동안의 오리엔테이션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직은 차가 없기 때문에 이번에도 호주 출신 싱글 선교사님인 Robyn이 운전을 맡아 주었습니다. BCS에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어 본인도 경험삼아 가 보고 싶다고는 했지만 저희로서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제가 일하게 될 Sibanor Clinic의 영국인 선교사인 Jamie 선교사 가정이 그들의 차를 사용하도록 빌려주기까지 했습니다. 그 집의 큰 딸도 지금 BCS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BCS로의 여행을 잘 이해하고 있는 가정입니다. 세네갈까지의 길이 멀고 어떤 길은 험하기도 한데 이렇게 배려해 주어 Jamie 선교사 가정의 미쯔비시 차가 저희의 발이 되어 주고 Robyn이 저희의 가이드가 되어 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이 모든 일정의 보호자가 되어 주셨구요.
아직도 어둑했던 오전6시30분 Robyn이 컴파운드 앞길로 와 주어 함께 반줄(Banjul)항구로 향했습니다. 저희가 도착할 때쯤 페리(Ferry)가 떠나는 바람에 다음 페리를 기다려야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한시간 정도 후에 다음 페리를 탈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하루종일 페리를 기다리게도 된다는데 운이 참 좋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이번에 세네갈 비자를 순조로이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감사제목입니다. 일년에 9차례 이상 다녀야하니 비자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는데 계속 이 모든 과정들이 은혜 가운데 진행되기를 기도합니다. 반줄 항에서 감비아 강을 건너서 다시 감비아-세네갈 국경을 향해 가야합니다. 오전9시에서 9시30분쯤 국경에 도착한 것 같고 감비아와 세네갈 국경수속을 마치니 오전 10시30분쯤 되었습니다. 국경 수속을 마치면 세네갈 내에서만 4시간 정도 운전을 더 해야한다고 들었는데 그 정보가 대략 맞았습니다.

중간 도시인 Kaolack까지의 길은 곳곳이 패여진 상태였고 제대로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에 비해 Kaolack 이후의 길은 훨씬 나았습니다. Dakar를 향한 표지판을 보며 계속 달렸고 Fatick과 M'bour를 지난 후에는 Gandigal, Nguekhohr이라는 자그만 마을을 통과하고 세번째 자그만 마을인 Sindia에서 Popenguine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바닷가쪽으로 좌회전을 했습니다. 망고가 많이 심어진 들판을 지나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두개의 나무기둥이 있었고 그 사이길을 따라가니 드디어 BCS... 오전6시30분에 떠난 길이었는데 오후 3시쯤 도착했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랍니다.
문득 한국에서 2001년 11월 한동대학교를 찾아가던 기억이 새로왔습니다. 마을을 한참이나 지나 벌판과 산들 가운데 외로이 세워졌던 학교, 하지만 한동이 하나님의 학교임을 느낄 수 있었지요... 주변 상황과 건물로만 보면 BCS는 한동대학교에 비할 수 없이 마르고 초라해보이기는 했지만, 한동과 비슷한 Spirit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BCS는 1980년 감비아를 남쪽에서 둘러싸고 있는 남부 세네갈 즉 Casamance지역의 행정도시인 Ziguinchor에서 10 Km 정도 떨어진 "Bourofaye"에 처음 세워졌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지금의 BCS (Bourofaye Christian School)라는 이름이 나왔지요. 지역분쟁 때문에 1997년 8월 Dakar [세네갈의 수도]에서 25 Km 정도 떨어진 Keur Massar라는 마을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가, 2002년 10월에 Dakar에서 남쪽으로 70 Km 떨어진 이곳 Kiniabour에 다시 오픈하게 된 것입니다.
이 학교는 웩(WEC)국제선교회 세네갈 팀의 사역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교육문제 때문에 떠나가는 선교사들이 늘면서 세네갈과 주변 지역 웩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을 돕기 위해 세워졌지만 다른 단체 선교사의 자녀들에게도 열려있지요. 이곳에 계신 선생님은 물론 MK들의 기숙사 생활을 돕는 기숙사 부모(Dormitory parents)들도 모두 선교사님들입니다. 주로는 웩 선교사님들이지만 여기에 다른 단체 선교사님들과 단기선교사로 온 도우미들이 함께 학생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학생 수는 약 40여명... 영국, 독일, 한국, 노르웨이, 나이제리아, 네델란드, 브라질... 총 17개국의 각기 다른 나라에서 모인 학생들이었습니다. 한국 학생으로는 세네갈에서 SIM을 통해 일하시는 선교사님 가정의 아들과 딸, 감비아에서 WAM을 통해 일하시는 선교사님 가정의 두 아들, 이렇게 네명이 있었습니다. 다음 학년에는 안식년에서 돌아오는 한국인 선교사 가정이 있어 학생 수가 더 늘어난다고 하네요.


한국 MK들과 함께 브라질 출신 MK들이 늘어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BCS의 특징 중에 하나는 출신나라 사람으로서의 identity를 존중해 주고 그것을 교육과정에도 반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전체는 영국식 교육을 지향하고 있지만, MK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 각 학생의 모국에 대한 교육에도 신경을 써주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학생들을 위해 Home Base라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곳에 계신 진준규, 하은혜 선교사님 가정이 이 일을 감당해 주고 계셨습니다. 학교 내 모든 곳에서의 공용어는 영어였지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아침식사 후 묵상시간 그리고 저녁을 함께 먹으며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이 일을 위해 헌신하신 한국인 선교사님 가정이 계신 것은 저희에게 큰 격려였고 두 분과의 교제로 5일간의 일정이 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스텝들과의 대화 중에 더 기도하고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5박6일의 일정을 잘 마치고 지난 23일인 주일에 감비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시바노의 Jamie 선교사님에게 차를 반납하여야 했기 때문에 돌아오는 루트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저희가 시바노로 이사를 하게 되면 가끔 이 길을 이용하게도 될 것이기에 저희로서는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약 30분 정도 헤매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순탄한 여행이었습니다. 감비아로 들어 온 후에는 운전을 맡아주었던 Robyn 선교사님이 전에 일하시던 Jarrol이라는 시골지역에 들러 하루밤을 자고 다시 시바노에 들러 Jamie 선교사님께 차를 돌려주었습니다. Robyn선교사님의 차로 다시 갈아타고 Manjai로 돌아오니 딱 일주일이 걸린 여행이었습니다.
이제는 희진이와 유진이와 진지한 대화를 나눈 후 아이들의 진학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시간이 되었습니다....
BCS는 1980년 감비아를 남쪽에서 둘러싸고 있는 남부 세네갈 즉 Casamance지역의 행정도시인 Ziguinchor에서 10 Km 정도 떨어진 "Bourofaye"에 처음 세워졌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지금의 BCS (Bourofaye Christian School)라는 이름이 나왔지요. 지역분쟁 때문에 1997년 8월 Dakar [세네갈의 수도]에서 25 Km 정도 떨어진 Keur Massar라는 마을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가, 2002년 10월에 Dakar에서 남쪽으로 70 Km 떨어진 이곳 Kiniabour에 다시 오픈하게 된 것입니다.
이 학교는 웩(WEC)국제선교회 세네갈 팀의 사역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교육문제 때문에 떠나가는 선교사들이 늘면서 세네갈과 주변 지역 웩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을 돕기 위해 세워졌지만 다른 단체 선교사의 자녀들에게도 열려있지요. 이곳에 계신 선생님은 물론 MK들의 기숙사 생활을 돕는 기숙사 부모(Dormitory parents)들도 모두 선교사님들입니다. 주로는 웩 선교사님들이지만 여기에 다른 단체 선교사님들과 단기선교사로 온 도우미들이 함께 학생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학생 수는 약 40여명... 영국, 독일, 한국, 노르웨이, 나이제리아, 네델란드, 브라질... 총 17개국의 각기 다른 나라에서 모인 학생들이었습니다. 한국 학생으로는 세네갈에서 SIM을 통해 일하시는 선교사님 가정의 아들과 딸, 감비아에서 WAM을 통해 일하시는 선교사님 가정의 두 아들, 이렇게 네명이 있었습니다. 다음 학년에는 안식년에서 돌아오는 한국인 선교사 가정이 있어 학생 수가 더 늘어난다고 하네요.
한국 MK들과 함께 브라질 출신 MK들이 늘어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BCS의 특징 중에 하나는 출신나라 사람으로서의 identity를 존중해 주고 그것을 교육과정에도 반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전체는 영국식 교육을 지향하고 있지만, MK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 각 학생의 모국에 대한 교육에도 신경을 써주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학생들을 위해 Home Base라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곳에 계신 진준규, 하은혜 선교사님 가정이 이 일을 감당해 주고 계셨습니다. 학교 내 모든 곳에서의 공용어는 영어였지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아침식사 후 묵상시간 그리고 저녁을 함께 먹으며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이 일을 위해 헌신하신 한국인 선교사님 가정이 계신 것은 저희에게 큰 격려였고 두 분과의 교제로 5일간의 일정이 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스텝들과의 대화 중에 더 기도하고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5박6일의 일정을 잘 마치고 지난 23일인 주일에 감비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시바노의 Jamie 선교사님에게 차를 반납하여야 했기 때문에 돌아오는 루트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저희가 시바노로 이사를 하게 되면 가끔 이 길을 이용하게도 될 것이기에 저희로서는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약 30분 정도 헤매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순탄한 여행이었습니다. 감비아로 들어 온 후에는 운전을 맡아주었던 Robyn 선교사님이 전에 일하시던 Jarrol이라는 시골지역에 들러 하루밤을 자고 다시 시바노에 들러 Jamie 선교사님께 차를 돌려주었습니다. Robyn선교사님의 차로 다시 갈아타고 Manjai로 돌아오니 딱 일주일이 걸린 여행이었습니다.
이제는 희진이와 유진이와 진지한 대화를 나눈 후 아이들의 진학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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