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제가 사용하고 있는 드림위즈(Dreamwiz) 계정의 탓일 것 입니다. 드림위즈가 데이터센터 이전을 위해 서비스를 잠시 중단시켰는데 이것에 문제가 생겨 정상 서비스 재개가 지연되고 있답니다.
오늘 이메일을 확인하러 클리닉 사무실에 왔더니 이메일 송수신이 안되네요.
혹시 급한 메일이 있으시다면 당분간만 Gmail 계정을 사용하셔도 되겠습니다. 주로 영문편지를 주고 받을 때 쓰는 계정이긴 한데 급할 때는 도움이 되겠네요... hjohnhan@gmail.com 입니다.
02 May 2009
27 April 2009
기도편지에 못다한 이야기 <#3>
8. 자매이면서 친구
딸 아이 둘을 연속으로 낳았을 때 아들이 없음을 아주 잠시 섭섭해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자매로 두 아이들을 있게 하심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가끔씩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희진이와 유진이는 참으로 친한 자매입니다. 희진이는 유진이를 아껴주고 유진이는 그보다 더 많이 언니를 따릅니다. 희진이는 또래보다 키가 좀 작고, 유진이는 또래보다 조금 큰 탓에 외국사람들은 둘이 쌍둥이가 아니냐고 물어보곤 합니다. 지난 학기에 학교에서 있었던 행사 중에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하루동안 쌍둥이인 것처럼 지내게 하는 "Twin Day"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때 찍은 사진이랍니다.

글쎄요, 우리가 볼 때는 확연히 다른데 외국사람들은 그럴듯하게 생각하기도 하겠네요. 얼마전 휴가 기간에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는 두 아이를 보면서 다시 한번 딸 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10. 망고를 기다리며
결혼 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국제협력의사로 2년반을 지내면서 우리에게 있었던 즐거움 중 하나는 맛있는 망고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 오면 최소한 과일은 많이 먹을 수 있으리라던 우리의 바램은 그리 현실적인 꿈이 아니었습니다. 때가 되면 나오는 소위 "제철 과일"은 먹을 수 있지만 그 외의 과일은 수도지역에 있는 슈퍼마켓에 그나마도 수입 컨터이너가 들어온 때가 맞으면 볼 수 있지만 가격은 엄청 비싸구요. 과일은 감비아보다는 영국에서, 영국보다는 한국에서 더 풍성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좋아하는 망고를 감비아에서는 최근까지 맛보지를 못했습니다. 바로 얼마 전 어딘가에서 일찍 수확한 것으로 보이는 망고가 나와 하나를 맛본 것이 이곳에서 먹은 첫 망고가 되었습니다. 얼마전까지 저희가 지내던 컴파운드에도 커다란 망고 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저희가 거기 있을 때는 아래 사진처럼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하는 때였지요. 하지만 이제는 주변의 망고나무들이 제법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조만간 본격적이 망고철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벌써 입맛이 당겨지네요...
딸 아이 둘을 연속으로 낳았을 때 아들이 없음을 아주 잠시 섭섭해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자매로 두 아이들을 있게 하심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가끔씩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희진이와 유진이는 참으로 친한 자매입니다. 희진이는 유진이를 아껴주고 유진이는 그보다 더 많이 언니를 따릅니다. 희진이는 또래보다 키가 좀 작고, 유진이는 또래보다 조금 큰 탓에 외국사람들은 둘이 쌍둥이가 아니냐고 물어보곤 합니다. 지난 학기에 학교에서 있었던 행사 중에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하루동안 쌍둥이인 것처럼 지내게 하는 "Twin Day"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때 찍은 사진이랍니다.
글쎄요, 우리가 볼 때는 확연히 다른데 외국사람들은 그럴듯하게 생각하기도 하겠네요. 얼마전 휴가 기간에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는 두 아이를 보면서 다시 한번 딸 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9. 꿀 만드는 파리, 꿀 만드는 형광등?
시바노의 새로 이사온 레드하우스 현관에는 형광등이 하나 달려 있었습니다. 이전에 시바노클리닉은 저녁에 두시간동안 발전기를 써서 의료 소독기를 돌리고 집안의 전열기구들을 쓴 적이 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태양열집열판을 써서 소규모의 전기를 만들고 지하수를 끌어올려 쓰고 있기에 이 형광등은 쓰지 않은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이었는데, 어느날 이 형광들 주변에 날벌레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침 집에 와있던 '마마두'에게 얘기를 했더니, 마마두 말이 그것이 파리의 일종이고 꿀을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꿀을 만드는 파리'라... 저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어쨌든 형광등케이스 내부에 집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 열어보기로 했습니다. 꿀을 만들지만 침이 없어서 '파리'라고 불리나 봅니다. 결국 벌집 혹은 로얄젤리 모양의 집과 거기에 흥건히 들어있는 꿀을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사사기의 삼손처럼 수수께끼를 하나 내 보아야겠습니다. " 에너지를 쓰는 것에서 에너지를 주는 것이 나오고, 밝은 것에서 단 것이 나온다.(cf.삿14:14)"^^
10. 망고를 기다리며
결혼 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국제협력의사로 2년반을 지내면서 우리에게 있었던 즐거움 중 하나는 맛있는 망고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 오면 최소한 과일은 많이 먹을 수 있으리라던 우리의 바램은 그리 현실적인 꿈이 아니었습니다. 때가 되면 나오는 소위 "제철 과일"은 먹을 수 있지만 그 외의 과일은 수도지역에 있는 슈퍼마켓에 그나마도 수입 컨터이너가 들어온 때가 맞으면 볼 수 있지만 가격은 엄청 비싸구요. 과일은 감비아보다는 영국에서, 영국보다는 한국에서 더 풍성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좋아하는 망고를 감비아에서는 최근까지 맛보지를 못했습니다. 바로 얼마 전 어딘가에서 일찍 수확한 것으로 보이는 망고가 나와 하나를 맛본 것이 이곳에서 먹은 첫 망고가 되었습니다. 얼마전까지 저희가 지내던 컴파운드에도 커다란 망고 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저희가 거기 있을 때는 아래 사진처럼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하는 때였지요. 하지만 이제는 주변의 망고나무들이 제법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조만간 본격적이 망고철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벌써 입맛이 당겨지네요...
기도편지에 못다한 이야기 <#2>
6. 제1회 초록마당
세네갈은 감비아에 비하면 한국에 비교되는 중국처럼 큰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시골의 삶이야 세네갈이나 감비아나 비슷하겠지만, 수도지역의 발전도를 비교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이 발전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슬람이 무척이나 강한 곳이지만 현지어 외에 프랑스어를 익혀야 한다는 또 하나의 부담 때문에 한국인 선교사님이 그리 많지는 않은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역이 넓다보니 감비아에 비하면 훨씬 많은 한국인과 한인 선교사님들이 계신 곳입니다. 당연히 선교사자녀(MK)들도 많아서 MK School이 두 군데나 있지요. 그 중에 한 곳이 희진이와 유진이가 다니고 있는 BCS입니다. 그동안 이 MK 전체를 위한 수련회가 한번도 열리지를 않았는데, 감사하게도 이번 학기가 끝났던 지난 4월25일부터 3박4일간 "초록마당"이라는 MK수련회가 있었습니다. 이 집회를 위해서 참 여러분들이 준비하고 진행하기 위해 수고를 하셨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한국WEC에서 MK사역을 하시는 두 분의 선교사님(채은화 그리고 김효은 선교사님)이 한국에서 세네갈까지 와 주셔서 아이들에게 큰 유익을 주고 가셨습니다. 특히 채은화 선교사님은 수년 전 BCS에서 한국인 아이들을 직접 섬기셨기에 더 큰 감회와 열정을 가지고 오셨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방학만 손꼽아 기다리던 희진이는 또다시 수련회 때문에 며칠 더 엄마 아빠와 헤어지는 것이 싫다고 울기도 했었지만 나중에 물어보니 3박4일동안 참 좋은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참석한 아이들의 반응이 다 좋아서 평가회를 통해 내년에도 같은 행사를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헤어졌습니다. 또 내년에는 어떤 모습의 캠프가 진행이 될지 벌써부터 이 모임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귀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 큰 감사를 올려드리게 됩니다.

세네갈은 감비아에 비하면 한국에 비교되는 중국처럼 큰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시골의 삶이야 세네갈이나 감비아나 비슷하겠지만, 수도지역의 발전도를 비교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이 발전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슬람이 무척이나 강한 곳이지만 현지어 외에 프랑스어를 익혀야 한다는 또 하나의 부담 때문에 한국인 선교사님이 그리 많지는 않은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역이 넓다보니 감비아에 비하면 훨씬 많은 한국인과 한인 선교사님들이 계신 곳입니다. 당연히 선교사자녀(MK)들도 많아서 MK School이 두 군데나 있지요. 그 중에 한 곳이 희진이와 유진이가 다니고 있는 BCS입니다. 그동안 이 MK 전체를 위한 수련회가 한번도 열리지를 않았는데, 감사하게도 이번 학기가 끝났던 지난 4월25일부터 3박4일간 "초록마당"이라는 MK수련회가 있었습니다. 이 집회를 위해서 참 여러분들이 준비하고 진행하기 위해 수고를 하셨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한국WEC에서 MK사역을 하시는 두 분의 선교사님(채은화 그리고 김효은 선교사님)이 한국에서 세네갈까지 와 주셔서 아이들에게 큰 유익을 주고 가셨습니다. 특히 채은화 선교사님은 수년 전 BCS에서 한국인 아이들을 직접 섬기셨기에 더 큰 감회와 열정을 가지고 오셨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방학만 손꼽아 기다리던 희진이는 또다시 수련회 때문에 며칠 더 엄마 아빠와 헤어지는 것이 싫다고 울기도 했었지만 나중에 물어보니 3박4일동안 참 좋은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참석한 아이들의 반응이 다 좋아서 평가회를 통해 내년에도 같은 행사를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헤어졌습니다. 또 내년에는 어떤 모습의 캠프가 진행이 될지 벌써부터 이 모임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귀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 큰 감사를 올려드리게 됩니다.
7. 악어야 놀자
시바노로 이사를 와서 집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집안 페인트는 현지인 두 명이 도와주었는데 선배 선교사님의 충고대로 제가 늘 함께 있으면서 감독을 해야 했습니다. 가끔은 제가 직접 페인트칠을 하기도 하구요. 커튼을 새로 달고 페인트칠을 하는데 두주간을 쓰고 나니 아이들의 방학이 되었지요. 
부활절 방학으로 초록마당을 마치고 감비아에 돌아온 아이들과 시바노 집에서 지내다가 감비아 수도지역(Kombo)과 세네갈의 수도 다카에서 2주간의 휴가를 함께 가졌습니다. Kombo(콤보)지역에는 최근에 비교적 큰 슈퍼마켓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레스토랑도 몇군데 갈만한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갈만한 곳은 많질 않습니다. 하루는 "Crocodile pool"에 함께 갔는데, 좁고 곳곳이 패여진 골목길을 지나니 개인이 운영하고 있다는 악어 양식장이 나왔습니다. 작고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곳이였지만, 조그만 새끼 악어에서 큰 악어 그리고 악어알까지 볼 수 있었고 직접 악어를 만져볼 수도 있다고 해서 아이들이 좋아하고 신기해 했었지요. 언제 감비아에 오시게 되면 악어를 한번 만져보고 가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방학이 끝난 아이들과의 마지막 며칠은 세네갈의 수도 다카에서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콤보(Kombo)에서 올라와 세네갈로 가기 위한 마지막 밤을 시바노에서 보내면서 아이들의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이 일을 얼마나 많이 하게 되고 또 얼마나 많은 작별인사를 하게 될까요? 물론 엄마 아빠와 보낼 며칠의 시간이 더 있었기에 그 날 밤은 아니었지만, BCS에서 헤어지던 날 희진이는 또 한번 울고 말더군요. 지난 학기 전화기 너머로 울어버리던 학기의 첫 주말이 또 돌아오고 있습니다. 기도편지에 쓴대로 또다시 주님을 바라보는 수 밖에 없겠지요... 
세네갈에서 돌아오는 길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갈수록 길게만 느껴집니다. 뙤약볕 밑에서 수시간씩 페리를 기다려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속히 적응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감비아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속히 생기던지요... 
부활절 방학으로 초록마당을 마치고 감비아에 돌아온 아이들과 시바노 집에서 지내다가 감비아 수도지역(Kombo)과 세네갈의 수도 다카에서 2주간의 휴가를 함께 가졌습니다. Kombo(콤보)지역에는 최근에 비교적 큰 슈퍼마켓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레스토랑도 몇군데 갈만한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갈만한 곳은 많질 않습니다. 하루는 "Crocodile pool"에 함께 갔는데, 좁고 곳곳이 패여진 골목길을 지나니 개인이 운영하고 있다는 악어 양식장이 나왔습니다. 작고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곳이였지만, 조그만 새끼 악어에서 큰 악어 그리고 악어알까지 볼 수 있었고 직접 악어를 만져볼 수도 있다고 해서 아이들이 좋아하고 신기해 했었지요. 언제 감비아에 오시게 되면 악어를 한번 만져보고 가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방학이 끝난 아이들과의 마지막 며칠은 세네갈의 수도 다카에서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콤보(Kombo)에서 올라와 세네갈로 가기 위한 마지막 밤을 시바노에서 보내면서 아이들의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이 일을 얼마나 많이 하게 되고 또 얼마나 많은 작별인사를 하게 될까요? 물론 엄마 아빠와 보낼 며칠의 시간이 더 있었기에 그 날 밤은 아니었지만, BCS에서 헤어지던 날 희진이는 또 한번 울고 말더군요. 지난 학기 전화기 너머로 울어버리던 학기의 첫 주말이 또 돌아오고 있습니다. 기도편지에 쓴대로 또다시 주님을 바라보는 수 밖에 없겠지요...
세네갈에서 돌아오는 길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갈수록 길게만 느껴집니다. 뙤약볕 밑에서 수시간씩 페리를 기다려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속히 적응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감비아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속히 생기던지요...
기도편지에 못다한 이야기 <#1>
오랜만에 마음을 먹고 기도편지를 쓰고 나니 편지에 다 적지 못한 이야기들이 마음에 남습니다. 짧막 짧막하게 몇가지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기도편지 읽기도 버거우실텐데... 글쎄요 이 블로그의 글들은 몇 분이나 읽으시게 될까요? 하지만 상관없지요. 어쩌면 우리들과 하나님께만 특별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겠지만... 마음이 내친 김에 휘적 휘적 적어보렵니다.
1. 컨퍼런스에서



4. 전도폭발(EE)
이선택 집사님 부부는 미국 동부에 있는 벧엘교회에서 단기선교로 감비아를 찾아 오신 산부인과 그리고 가정의학과 의사 부부이십니다. 이 집사님은 서울대를 졸업하신 후 7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생활을 하시다 지금은 은퇴를 하셨다고 합니다. 수년전부터 매년 감비아에 와서 봉사를 하셨는데 이번에는 최근에 미국의 한인교회 도움으로 감비아 수도지역에 세워진 클리닉(HOMM Clinic)에 베이스를 두고 일하고 계셨지요. 저희 선교회와 직접 관계는 없었지만 같은 한국인 의사라는 부분 때문에 몇 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두 분의 마음 가운데 '전도폭발'훈련에 대한 열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비아 현지인 크리스챤을 대상으로 전도폭발 훈련을 시키시고 계셨습니다. '전도폭발'은 모교회인 남서울교회에 있을 당시부터 많이 들어왔기에 좋은 훈련프로그램으로 익히 알아 왔지만 정작 제가 훈련을 받아본 적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슬람국가에 적합한 방법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구요. 하지만 오픈된 이슬람국가인 감비아의 특성상 적용 가능할 수 있다는, 그리고 모슬렘을 위해 변형된 방법까지 다룬다고 하여 큰 관심이 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서부아프리카선교회(WAM) 한병희 목사님의 본부 소속으로 되어 있는 네명의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매주훈련에 수주간 함께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훈련을 이곳에서 속성으로, 그것도 영어로 훈련을 받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집사님이 떠나신 후에 바톤을 이어 받아 네주간을 더 모임을 갖기로 하였고 그 책임이 저에게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의사이시지만 복음 전도에 열정을 가지신 분,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 이만큼의 열정으로 선교지를 찾아다니시는 분을 뵙는 것 자체가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1. 컨퍼런스에서
2월 말에 있었던 컨퍼런스는 저희에게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모임이었습니다. 돌아보니 10년도 넘은 시간 전에 선교를 마음 먹고 이제야 선교지에서 첫 컨퍼런스를 갖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여러 사연 후에 이곳 아프리카의 감비아에 저희가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마침 주제 말씀으로 나누어진 '우리의 계획과 뜻이 아닌, 주님의 계획과 뜻 만이 영영히 서리라'는 말씀이 더 단단히 붙잡아야 할 약속이었고, 언젠가 사역 예정지로 생각했던 예맨에서 오신, 그것도 의사 선교사 부부와의 만남은 특별한 공급하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컨퍼런스는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7시까지 말씀과 기도 그리고 회의로 연속된 빡빡한 일정이었습니다. 컨퍼런스 중에 찍은 사진이 많지 않아 유일하게 있었던 나들이 사진이 기도편지에 실렸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오후 시간에 보트트립을 가졌는데 감비아 강 하구에서 연안 바다를 도는 좋은 휴식의 시간이었지요. 주제 말씀 앞에서 부부가 찍은 아래 사진은 컨퍼런스 후반에 형제가 걸렸던 몸살감기를 생각나게 합니다. 감비아에 와서 처음으로 아주 심하게 앓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도 아프길래 말라리아가 아닌가 검사끼지 하기도 했었지요.
2. 아마두
감비아에 온지 이제 막 7개월이 넘었습니다. 6개월로 주어진 짧은 언어의 과정이 끝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깊은 관계를 맺은 현지인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새기고 기도하게 하시는 몇 가정이 있습니다. 아직 기도편지에 적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두, 파투, 압둘, 무사 들이 그런 이름들입니다. 그 중 아마두는 저희가 다니던 교회 앞에서 노점상을 하는 친구입니다. 교회로 향한 골목길에서 환한 웃음으로 인사하던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친해졌습니다. 주변 큰 길가에서 좌판을 놓고 땅콩을 팔던 여자아이들에게 단골이 되었는데 그 아이들이 아마두의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더 가까이 느껴진 것 같습니다. 시바노로 이사를 왔지만 서로 연락처를 나누었기 때문에 계속 그 끈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편지에는 컴파운드에서 친해진 '무사'의 사진만을 올렸습니다.
3. 오메가교회 그리고 크리스와의 작별
오메가교회는 1988년 파이프라인이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작은 교제모임으로 시작된 교회입니다. WEC한국본부의 전임 본부장님, "김치 하나도 포기 못한 선교사"의 저자로도 알려진 유병국,류보인 선교사님 가정을 통해 세워진 교회이지요. 저희에게는 예배를 드린 첫 감비아 교회 그리고 첫 아프리카 교회였을 뿐 아니라, 마음 가운데 이런 교회 개척의 소망을 새롭게 한 교회이기도 했습니다. 담임목사이신 맛디아 목사님은 가끔 "Mok-Sa-Nim"이라는 한국어를 쓰시고 영적 아버지였던 유병국 목사님을 그리워하는 말씀을 나누기도 합니다. 사진에는 이 맛디아 목사님과 언젠가 블로그에서 언급한 '크리스'가 있습니다. 크리스가 떠나기 전 마지막 주일예배에서 맛디아 목사님이 기도해 주고 계신 모습입니다. 저희도 이사를 하게 되면서 그 다음 주 오메가 교회와 작별을 했습니다.
4. 전도폭발(EE)
이선택 집사님 부부는 미국 동부에 있는 벧엘교회에서 단기선교로 감비아를 찾아 오신 산부인과 그리고 가정의학과 의사 부부이십니다. 이 집사님은 서울대를 졸업하신 후 7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생활을 하시다 지금은 은퇴를 하셨다고 합니다. 수년전부터 매년 감비아에 와서 봉사를 하셨는데 이번에는 최근에 미국의 한인교회 도움으로 감비아 수도지역에 세워진 클리닉(HOMM Clinic)에 베이스를 두고 일하고 계셨지요. 저희 선교회와 직접 관계는 없었지만 같은 한국인 의사라는 부분 때문에 몇 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두 분의 마음 가운데 '전도폭발'훈련에 대한 열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비아 현지인 크리스챤을 대상으로 전도폭발 훈련을 시키시고 계셨습니다. '전도폭발'은 모교회인 남서울교회에 있을 당시부터 많이 들어왔기에 좋은 훈련프로그램으로 익히 알아 왔지만 정작 제가 훈련을 받아본 적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슬람국가에 적합한 방법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구요. 하지만 오픈된 이슬람국가인 감비아의 특성상 적용 가능할 수 있다는, 그리고 모슬렘을 위해 변형된 방법까지 다룬다고 하여 큰 관심이 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서부아프리카선교회(WAM) 한병희 목사님의 본부 소속으로 되어 있는 네명의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매주훈련에 수주간 함께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훈련을 이곳에서 속성으로, 그것도 영어로 훈련을 받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집사님이 떠나신 후에 바톤을 이어 받아 네주간을 더 모임을 갖기로 하였고 그 책임이 저에게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의사이시지만 복음 전도에 열정을 가지신 분,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 이만큼의 열정으로 선교지를 찾아다니시는 분을 뵙는 것 자체가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5. BCS의 설날
영국에 훈련을 받으러 가면서 희진이와 유진이에게 한복을 장만해 주었습니다. 영국에서도 잘 쓰였던 그 한복을 감비아에 가져가려 하는데 유진이는 이미 사이즈가 맞지를 않더군요. 많이 쓰일 것 같지는 않아 무심히 희진이 것만 챙겨서 넣어 왔는데 BCS에서 맞은 지난 설에 희진이가 이 옷을 입고 BCS근처 세네갈 선교사로 계신 선은균 선교사님 댁에 세배를 다녀왔더군요. BCS로 가게 되면서 작은 카메라를 선물해 주었는데 희진이가 여기에 사진 담는 것을 좋아하고 저희도 이 사진들을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사진에 있는 6명이 BCS에 있는 한국인 MK들인데 저희 외에 감비아에 계신 선교사님 그리고 세네갈에 계신 선교사님의 가정에서 두 명씩의 형제와 남매가 와 있습니다. 희진이와 유진이가 좋아하고 따르는 '수'언니가 앞줄의 맨 가운데 앉아 있네요.요한과 마리아의 편지 [#016] 2009년 4월


“너희도 지금은 근심하지만,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는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너희에게서 그 기쁨을 빼앗지 못할 것이다.”
(요한복음16:22)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십니다.
내 발을 사슴의 발과 같게 해 주셔서 가파른 산 위에서도 다닐 수 있게 하십니다…”
(하박국3:19)
사랑하는 분들께,
지금쯤 고국은 벚꽃이 만발한 계절이 아닐까 그려봅니다…기도편지를 적다 보니 자연스럽게 힘들고 어렵다는 얘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웬지 그런 기도편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힘든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려 보았지만, 초기 정착기라서 그런지 계속적으로 마음을 써야 할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얼마를 지내고, 말씀 가운데 어려움 중에 나눌 소망의 마음을 주셔서 편지를 새로 적어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힘든 가운데 주님으로 말미암은 새 힘을 갖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1월, 아이들을 세네갈로 떠나 보내고… ]
기숙사 학교에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것이 희진이와 유진이에게는 어렵고 힘든 것이 당연한 과정임을 봅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매일 부부가 함께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감사한 제목입니다. 영적 전쟁터에서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그 분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보기 원하심을 봅니다. 여전히 만나고 헤어지는 시간은 쉽지 않습니다. 이번 한 달간의 방학 동안에도 엄마 아빠와 떨어지는 것의 어려움을 얘기할 때,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견고히 믿는다는 것이 매일 매일의 싸움임을 배웁니다. BCS 학교에는 저희 아이들이 많이 의지하던 한국인 선교사님 부부께서 계시는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번 학기 중에 안식년으로 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또, 유일하게 있던 한국인 여자 언니 한 명도 선교대회에 참석하게 된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들어가게 되어, 어렵게 적응해 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더 힘든 상황이 될 것 같습니다. 여름 방학 전 5주간, 쉽지 않을 그 시간 동안 주님의 일하심과 간섭하심을 볼 수 있도록 특별히 이 부분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 2월, 감비아에서의 첫 컨퍼런스.. ]
지난 2월 20일부터 27일까지 저희 감비아 WEC 모든 식구들이 모여 지난 1년간의 일들을 정리하고 올 한 해의 일들을 기도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사로 예멘에서 오랜 기간 사역하셨던 네덜란드 의사 선교사 부부가 오셔서 여러 귀한 말씀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주제 말씀은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리라... But the plans of the LORD stand firm forever… (시33:11)”였습니다. 저희에게 주셨던 약속, “사람을 낚는 어부”에 대한 확증처럼 느껴져 감사했습니다. 무슬림, 특히 저희가 종족어를 배우고 있는 만딩고 족속들을 바라보며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성 같은 느낌을 받을 때마다, 주님의 말씀은 늘 힘이 되고 격려가 됩니다. 저희 팀이 감사한 것은 이렇게 모이기와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오신 선교사님들과 주님 안에서 연합과 사랑, 특히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도록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영어로 하는 의사소통이 마음 고생이 되어 수시로 좌절을 느끼지만, 선교사님들 가운데서 작은 어려움까지 진정한 마음으로 함께 나누고 기도할 특별한 동역자가 생기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 3월, 마무리 그리고 또 새로운 시작… ]
저희 부부는 현지 문화와 언어 습득을 위해 현지인들과 함께 사는 거의 5개월간의 컴파운드 생활을 은혜와 감사함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솔직히 만딩고 언어의 진전은 우리의 바람에 못 미쳤지만, 감비아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을 이해하고 배우는데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방학을 맞아 감비아에 돌아온 아이들과 그간 정들었던 감비아 식구들이 함께 생선 바베큐를 나누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좋은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계속 그들을 품고 기도하며 관계를 가질 생각입니다.3월 16일, 저희가 정착하게 될 시바노(Sibanor)라는 지역으로 최종적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형제가 6월부터 근무하게 될 진료소 울타리 안에는 영국인 한 가정, 호주 싱글 선교사님, 독일 싱글 선교사님 그리고 3명의 단기 사역 자매들이 살고 있습니다. 오래 전 지은 집이기에 낡긴 하지만, 저희 나름대로 아이들이 오기 전 집을 단장하기 위해 두 주 정도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습니다. 전기와 수도가 없는 시골 지역으로 이사한 것이 큰 변화이지만, 그 외에도 벌레가 더 많아진 것, 대문이나 담의 개념이 약해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 놀기를 원하는 아이들이 수시로 찾아온다는 것, 그리고 시바노 지역이 감비아에서 내륙으로 들어 와 있기에 더위가 더 심해진 것도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 주님 한 분 만으로…]
변화된 상황과 환경 속에서 힘들다고 회피하고 주저 앉고 적당히 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다시 약해진 발과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이 나의 힘이십니다’ 라고 선포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이런 마음으로 바꾸시고 새롭게 힘 주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감사 (Praise)…
1) 5개월 간 현지인 컴파운드의 삶, 변화와 시험의 기간을 무사히 지내게 해주신 은혜,
2) 우리가 약해질 때 보여주시고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여러 세심한 공급하심을 보는 기쁨.
3) 한 학기를 잘 마친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 때문에 더 깊어지고 넓어진 부부 중보기도 시간의 축복들을… 감사합니다.
기도 (Prayer)…
1) 주님이 보여주시는 영혼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기쁜 소식을 담대히 전할 수 있도록
2) BCS 에서 맞는 아이들의 두번째 학기, 특별히 한국 선생님과 한국 여자 언니의 공백이 있는 학기말 5주간 동안 주님의 신실하심을 체험할 수 있도록
3) 6월부터 시작할 형제의 병원 진료 가운데 주님의 사랑이 전해지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여러 환자들이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고침을 받도록
4) 선교부에서 자매에게 병원 행정 사역을 하도록 권하는데, 주님의 뜻과 인도 하심을 잘 분별하도록
5) 만딩고 종족어와 영어가 믿음과 인내, 주님 주신 지혜로 계속 진보 할 수 있도록
6) 더운 날씨와 벌레들로 쉽게 지치고 힘든데, 늘 영육간의 강건함을 잃지 않고 주님의 보호하심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선교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009년 4월 23일
- 보냄을 받은, 요한과 마리아 가족 (한혁준/안현숙/희진/유진) 올림
[ 추신 – 이메일과 관련된, 작은 그러나 중요한 부탁 한가지!! ]
시바노로 옮겨오면서 인터넷 환경이 더 열악해졌습니다. 56K 전화모뎀을 쓰는데, 그나마 실제로는 28K 정도 밖에 속도가 안 나옵니다. 이메일의 첨부 파일을 100KB 이하로 줄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끔은 ADSL이 되는 환경에 가지만, 대부분은 이곳 시바노에 머물고 있기에 인터넷 환경에 따라 이메일 답신이 조금씩 지연될 수 있는 부분도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이메일은 여전히 저희에게 큰 격려가 됩니다. ♥
13 March 2009
이사를 갑니다.
[We are going to move to Sibanor soon... on Monday 16th of March...]
[이사를 앞두고...]
지난 해 11월에 이곳 컴파운드로 이사를 와서 이제 막 5개월째에 접어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만딩고를 배워왔고.. 아이들을 세네갈에 보냈고.. 컴파운드 사람들과 친해지기 시작했지요. 이제 이 곳 "만자이 쿤다(Manjai Kunda)" 사람들과 이별을 하고, 다음 주 월요일인 3월16일에 "시바노(sibanor)"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감비아로 온 6개월 사이 세번째 정착지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제 이 새로운 곳에서는 최소한 안식년을 갖기 전까지는 있게 될 것 입니다. 6월에 형제가 병원 진료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좀 더 언어를 배우는 기간으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사 후 집을 정리하고 아이들의 부활절 방학이 끼어 있어서 최근에 그랬던 것처럼 아마도 시간은 빨리 지나갈 것 같습니다.
"시바노(Sibanor)"는 내륙쪽을 향해 차로 두시간 정도가 걸리는 시골지역입니다. 오랜기간 감비아 웩(WEC) 팀이 클리닉을 중심으로 일해 온 지역인데 언젠가 블로그에서 소개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사하고 새로운 곳에 정착해야 하는 또 한번의 변화(transition)를 위해, 특별히, 이사 준비를 위한 일의 진행이 느리고 좀 더 어려운 지역으로 들어 가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 자매를 위해 기도를 부탁합니다.
[이사를 앞두고...]
지난 해 11월에 이곳 컴파운드로 이사를 와서 이제 막 5개월째에 접어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만딩고를 배워왔고.. 아이들을 세네갈에 보냈고.. 컴파운드 사람들과 친해지기 시작했지요. 이제 이 곳 "만자이 쿤다(Manjai Kunda)" 사람들과 이별을 하고, 다음 주 월요일인 3월16일에 "시바노(sibanor)"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감비아로 온 6개월 사이 세번째 정착지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제 이 새로운 곳에서는 최소한 안식년을 갖기 전까지는 있게 될 것 입니다. 6월에 형제가 병원 진료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좀 더 언어를 배우는 기간으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사 후 집을 정리하고 아이들의 부활절 방학이 끼어 있어서 최근에 그랬던 것처럼 아마도 시간은 빨리 지나갈 것 같습니다.
"시바노(Sibanor)"는 내륙쪽을 향해 차로 두시간 정도가 걸리는 시골지역입니다. 오랜기간 감비아 웩(WEC) 팀이 클리닉을 중심으로 일해 온 지역인데 언젠가 블로그에서 소개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사하고 새로운 곳에 정착해야 하는 또 한번의 변화(transition)를 위해, 특별히, 이사 준비를 위한 일의 진행이 느리고 좀 더 어려운 지역으로 들어 가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 자매를 위해 기도를 부탁합니다.
* 저희가 곧 이사갈 병원 내 사택입니다: '레드하우스'라고 부릅니다.
[아이들...]
중보 기도 요청 후 아이들 소식을 염려해 주시고 궁금해 하셨는데, 그 사이 아이들은 학교에 조금씩 더 적응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쉽지 않은 모습들이 간간히 보이지만, 학기초에 비해 많이 안정이 된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1월에 아이들을 세네갈의 학교에 보내고 쉽지 않은 기간을 보내는 동안 저희의 중보기도 요청에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해주신 많은 분들로 인해 큰 격려를 받았습니다. 이 일을 통해, 우리로 함께 마음을 모으게 하신 주님께서 친히 아이들의 마음을 만져 가심을 보게 되고 그것의 증인이 되는 것이 저희에게도 큰 감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같은 모습으로 동역자님들을 위한 중보에 계속 열심을 내려 애쓰고 있습니다. 계속 아이들 학교와 늘 부족한 선생님의 충원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조만간 기도편지를 통해 다시 소식을 나누겠습니다...
* 희진이 반 아이들: 4, 5, 6학년이 함께 공부합니다.
* 한국인 MK(선교사자녀)들이 열리는 나무? ^^
01 February 2009
1월의 마지막 날에...
새로 시작된 한 해가 벌써 첫 달을 다 보내고 있습니다.
1월은 아이들을 세네갈로 보내고 또 그것을 지켜보는 일로 꽉 차버린 느낌입니다.
그 사이 지난 13일(화) 시작된 아이들의 학기도 어느덧 보름을 넘어가고 있네요...
아이들의 학교생활 첫 주말 이후 당분간은 2-3일에 한번씩 계속 통화를 하기로 했습니다.
전화기 너머 우는 목소리를 들려주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나아지는 것에 느끼며
함께 중보해 주시는 분들과 함께
'기도' 즉 모든 일들을 통해 친히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과의 대화 가운데
좀 더 깊게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얼마 전 웩 감비아의 선교사님 한 분께서 희진 엄마에게 짧은 글을 부탁했습니다.
저희 선교사끼리 나눠 볼 작은 소식지에 실기 위해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의 느낌을 정리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래는 희진 엄마가 이 부탁을 받고 쓴 글입니다.
그동안 중보해 주시는 분들과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에베소서의 말씀대로, 굳은 믿음으로 주님을 기대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하나님께
그리고 함께 기도해 주시는 분들께 다시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 분께서 이 일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시길 원합니다. (에베소서 3:20,21)
" Since we were in CO(candidate course) in autumn 2007 and started thinking of The Gambia as our future field, we had to consider that my girls, Hee-Jin(Joy) and Yoo-Jin(Grace) would be sent away to the MK boarding school which is BCS in Senegal. If John is going to work in the clinic in Sibanor where does not seem to have the proper school for them, it might be the only and hopefully the best option that we let them go to the boarding school although they are quite young to be away from us.
In spite of our long preparation with them as we have prayed and shared together for the separation, we did realize that it has been more painful and the heart-breaking trial than we expected. At the first weekend of school, we discovered that they had had such a hard time. They asked us to bring them back here with crying over the phone. Before we sent them to the boarding school one of our concerns was the possibility to give them the bitterness and the scar remained in their heart even after they grow up because they might feel the lack of love and care that they should receive from us at their young age.
That is the reason why John and I have earnestly lifted our daughters again into the presence of our loving, caring God with many tears. As we have kept praying, we could find that it is for us to know God’s heart even better. He sent His only precious Son, Jesus into the earth, so He sincerely knows our heart and wants us to pray for others with this heart. Since then we have had comfort and relief from Heaven. Furthermore, our faithful Father who loves my girls has kept reminding us that He is able to do infinitely more than all we ask or imagine for them, by His mighty power at work within us. (Ep. 3:20) Therefore, we are going to keep praying even more deeply for others as well as my daughters in faith. We are also looking forward to seeing the work God will have done for them beyond our imagination. To Him be glory both now and forever. Amen (Ep. 3:21) "
1월은 아이들을 세네갈로 보내고 또 그것을 지켜보는 일로 꽉 차버린 느낌입니다.
그 사이 지난 13일(화) 시작된 아이들의 학기도 어느덧 보름을 넘어가고 있네요...
아이들의 학교생활 첫 주말 이후 당분간은 2-3일에 한번씩 계속 통화를 하기로 했습니다.
전화기 너머 우는 목소리를 들려주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나아지는 것에 느끼며
함께 중보해 주시는 분들과 함께
'기도' 즉 모든 일들을 통해 친히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과의 대화 가운데
좀 더 깊게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얼마 전 웩 감비아의 선교사님 한 분께서 희진 엄마에게 짧은 글을 부탁했습니다.
저희 선교사끼리 나눠 볼 작은 소식지에 실기 위해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의 느낌을 정리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래는 희진 엄마가 이 부탁을 받고 쓴 글입니다.
그동안 중보해 주시는 분들과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에베소서의 말씀대로, 굳은 믿음으로 주님을 기대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하나님께
그리고 함께 기도해 주시는 분들께 다시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 분께서 이 일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시길 원합니다. (에베소서 3:20,21)
" Since we were in CO(candidate course) in autumn 2007 and started thinking of The Gambia as our future field, we had to consider that my girls, Hee-Jin(Joy) and Yoo-Jin(Grace) would be sent away to the MK boarding school which is BCS in Senegal. If John is going to work in the clinic in Sibanor where does not seem to have the proper school for them, it might be the only and hopefully the best option that we let them go to the boarding school although they are quite young to be away from us.
In spite of our long preparation with them as we have prayed and shared together for the separation, we did realize that it has been more painful and the heart-breaking trial than we expected. At the first weekend of school, we discovered that they had had such a hard time. They asked us to bring them back here with crying over the phone. Before we sent them to the boarding school one of our concerns was the possibility to give them the bitterness and the scar remained in their heart even after they grow up because they might feel the lack of love and care that they should receive from us at their young age.
That is the reason why John and I have earnestly lifted our daughters again into the presence of our loving, caring God with many tears. As we have kept praying, we could find that it is for us to know God’s heart even better. He sent His only precious Son, Jesus into the earth, so He sincerely knows our heart and wants us to pray for others with this heart. Since then we have had comfort and relief from Heaven. Furthermore, our faithful Father who loves my girls has kept reminding us that He is able to do infinitely more than all we ask or imagine for them, by His mighty power at work within us. (Ep. 3:20) Therefore, we are going to keep praying even more deeply for others as well as my daughters in faith. We are also looking forward to seeing the work God will have done for them beyond our imagination. To Him be glory both now and forever. Amen (Ep. 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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